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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Winnie the Witch 2023. 2. 22. 00:19

선택에 대한 후회,
삶을 미워하는 것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하고,
낙담하여 다 포기하게 만드는 순간을
잠재력이 풍성하게 넘치는
설렘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만들어주는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일 매순간 우리는 새로운 우주로 들어가요.
자신을 타인 그리고 또 다른 자신과 비교하며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죠.
사실 대부분의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는데 말이에요.
삶에는 패턴이.......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더이상 이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죽음을 원하는 노라에게
자정의 도서관은 후회를 지울 수 있는
여러 다른 삶들을 살아보게 한다.
그리고 더 좋은,
더 나은,
더 행복한,
더 성공한 삶을 바라며
후회하는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은 없다고,
여러 갈래길이 있을 뿐이라고 말해준다.

여러 가능성의 삶을 살아보아도
완벽한 삶은 없다.
그 갈래길마다 행복과 불행이
다 섞여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어봤자
그 길에도 고통과 슬픔이 존재한다.

게다가 맘에 쏙 드는 삶이 있어도
그 삶 속에서 나는
남의 삶을 훔쳐 주인인 척 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가 겪은 시간들 속의
추억, 땀, 애씀, 관계.......
이런 것이 있어야 내 것일텐데

모든 게 제대로 되었지만
이것은 그녀가 이룬 삶이 아니었다.
노라는 그저 영화 중간에 들어왔을 뿐이다.
이건 도서관에서 뽑은 책일 뿐
사실 그녀의 소유가 아니었다.


내 삶이 어떤 모양이든
내 힘으로 내가 써야
내 것이 된다.

노라는 살고 싶었다.
노라는 살기로 마음 먹었다.
노라는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노라가 무너지는 자정의 도서관에서
자기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데에
필요한 문장은
일인칭 현재 시제의
"나는 살아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


노라는 이제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후회하고 계속 후회하고
시간이 바닥날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후회하기는 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처음에 부모, 형제, 애인, 친구, 배우자 등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선택했던 노라는
이제 자기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알고
자신 안에 힘이 있음을 안다.

모든 게 달라진 이유는
이젠 그녀가 단지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상 속 완벽한 딸이나 동생, 애인, 아내, 엄마,
직원, 혹은 무언가가 되는 데서
유일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며
자신만 책임지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선택할 수 없다.
선택의 어려움은
포기하지 못하는 데에 있기도 하다.
내 안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과감한 포기를 해보아도 된다.
꿈을 크게 가지고
크게 저질러 보아도 된다.
다른 선택을 하는 삶도
완벽하지 않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부딪혀봐야 안다.
"살아보지 않고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지금-여기'에서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삶을 살아낸
태도와 관점
일상 속 아주 자잘한 선택들이 모여서
내 것인 내 삶이 만들어진다.
그 삶에 애착이 생기고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삶 속에서 또다시
어떤 슬픔과 어려움을 만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당해낼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그녀 안에는 불이 있었다.
이 불이 그녀를 따뜻하게 해줄지
혹은 무너뜨릴지
그녀는 궁금했다.
그러나 깨달았다.
불에는 아무런 동기가 없었다.
오직 그녀에게만 있었다.
힘은 그녀의 것이었다.


후회는 필요없다.
내가 바뀌면 다른 것도 바뀐다.
옳은 선택은 없다.
내가 체스판의 폰이라도
이미 게임에 진 것처럼 굴지 말자.
내 탓이 아니다.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가 아니다.
폰이냐 퀸이냐가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했느냐가 중요하다.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마!

설사 네가 폰이라고 해도,
아마 우리 모두 그럴테지만,
넌 폰이 가장 마법같은
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폰은 하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폰은 절대
그냥 폰이 아니니까.
폰은 차기 퀸이야.
넌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방법만 찾으면 돼.
네가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는 순간
상황은 변하지.
좀 더 무질서해져.
네가 말을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그 무질서는 점점 쌓이는 거야.
체스는 쉬운 게임이지.
하지만 잘하기는 어려워.
네가 수를 둘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의 세상이 열리거든.
체스를 두는 데 올바른 법은 없어.
그저 많은 방법이 있을 뿐이야.
인생과 마찬가지로.
체스에서는
가능성이 모든 것의 기본이야.
모든 희망과 꿈, 후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의 기본이지.


그리고 한가지 기억할 것.
노라도 누군가 한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그걸 발견했다면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회한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
누군가 내편이 되어
내 손을 잡아줄 사람,
'사랑'이 있다면
삶을 살아낼 용기가 생긴다.
우리는 절대 바닥날 일 없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니까. 또한 그러한 나를
나 자신도 열렬히 사랑하기를
심리상담을 의뢰하시는 많은 분들이
'증상'에서 벗아나고 싶다고 하신다.
증상은 내가 나에게 외치는 말이다.
이 증상이 핵심이 아니라
증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루고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제 나 스스로 써나갈
나의 가능성의 날들을
설렘으로 기대하기를

인생은 이해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