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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더 드레서, 인생의 마지막에서
    누리기/무대예술테라피 2024. 11. 4. 02:09

    오만석 배우가 연극을 한다고 하여
    큰딸과 함께 예매를 해두고
    정동극장으로 갔다.

    예쁜 돌담길을 따라 걸으니
    지하철역에서 십여분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또한 오만석 배우 뿐 아니라
    송승환 배우의 연기도 볼 수 있어
    기대가 된다.

    처음 가본 정동극장은
    참 예쁘다.

    카페도 있어 차를 가지고 뜰안에서 마시니
    한적하니 좋다.
    간단히 요기도 할 수 있다.

    정동극장은 단차가 좋아서
    잘 보이기까지 하는 극장이라지만
    난 가 본 적이 없으니
    맨앞열로 예매를 했다.
    발 안잘리고 잘 보임.
    하지만 역시 올려다보니
    선생님의 쇼파의자 뒤에서 하는 연기는
    쇼파에 가려지기도 함.

    두사람의 배우만 알고 가서
    다른 역할이 있는 줄 몰랐는데
    다른 역들이 감초처럼 재미를 더해
    극이 마냥 무겁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

    내용은 사실 재밌고 유쾌하지 않다.
    한 자리에서 전문가가 된 명배우가
    이제는 치매도 오고
    타인에게 걱정거리가 되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는 노인이 되어
    삶을 정리하고
    생을 마감하는 내용이다.

    송승환 배우가 이 배우 선생님을 연기하고
    오만석 배우가 이 선생님의 드레서 역할을 한다.
    16년간 곁에서 일하여
    옷을 챙겨주는 것 뿐 아니라
    작품을 돕기도 한다.

    노인의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이 보이지 않는
    젊은 우리 딸은
    그리 재밌지 않았나보다.
    사실 젊은이보다는 중년의 관객이 많았다.
    우리 딸은 20년을 함께 일하며
    애틋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던
    연출가 맷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젊고 어린 시절 한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단순히 에로틱한 사랑의 감정으로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닐진데..
    선생님이 리어왕의 반지를 맷지에게 주며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에서,
    같은 이유로 젊은 날엔 그 반지를
    맷지에게 선물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생각처럼
    '반지'에 꽂혀버리는 젊은이는
    이상하다고 한다 ㅋ
    세월을 좀 살다보면
    에로틱한 감정보다 훨씬 깊고 탄탄한 정서가
    관계 속에 자리잡게 되고
    그것이 더 신뢰로운 관계를 이어가게 해주는데
    젊은이는 아직 모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중년의 인생들은 아마도
    반짝반짝 빛나며
    생기가 철철 흘러넘치며
    무슨 일이든 자신있게 해내고
    실수해도 유연하고 뻔뻔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그 젊음을 내면 깊숙이 품고 있는
    그런 노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지금 보이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무대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
    작품을 잘 올려야한다는 의지는
    몸에 배어 남아있다.
    이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 특히 드레서 노먼은
    선생님이 끝까지 지켜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도 16년을 한결같이
    바로 곁에서 같은 것을 경험하며
    그만한 믿음을 쌓았으리라.

    웃으며 눈물 흘리며 우리는
    빛나는 인생의 한때를 엿보며
    이제 자연의 순리대로
    저물어가는 모습에 공감하며
    먹먹한 허전함을 맛보게 된다.
    마지막 노먼의 모습처럼
    완벽한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끝나버리는
    삶의 허무함에 화가 나기도 하고,
    위대한 젊은 날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끝을 맞게 됨에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고,
    긴 세월 함께 한 관계의 끝에서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며,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순환이다.
    열심히 나의 삶을 살다가
    겸허히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송승환배우의 풋풋한 청춘드라마 시절을 알고 있는 나는
    연극 속 선생님을 보며
    더 많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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